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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우리는 합법적인 불평등을 묵인하게 되었나

Cid_tw 2016. 3. 19. 23:37

…….최근에 보도되었듯이, 미국 국가안보국에 의한 전 세계 정부와 개인의 감시는 오늘의 세계가 단순히 평화롭고 안락한 공간이 아니라 통제와 감시가 일원화된 끔찍한 공간임을 잘 보여준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헌법은 시민의 자유와 통신상의 비밀을 보장하지만, 전 방위적으로 자행되는 정보통제와 인권침해 앞에서 개별 국가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벡이 지적하듯이, “민족국가 단위의 법제도는 유령 같은 제도가 되어버렸다.” 세계화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위험이고, 이 세계화된 정보과잉 속의 주체박탈이다. 우리는 국가 간의 상호관계를 손상시키지 않을 제도적 장치를 고안해 내야 한다. 위기관리를 위한 국제협약이 필요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위한 사고 전환도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구속할 수 있는 힘은 무엇보다 법에서 온다. 유럽헌법헌장은 그 좋은 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여전히 개방적 문제의식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다시 세계시민으로서의 삶을 생각할 수 있다. (후략)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책 말미에 항상 세계화, 세계 시민 따위의 단어로, 어쩌면 현 상황에선 매우 거창한 것일 수 있고 이미 도래했을 수도 있는, 현재진행형의 단원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거기에는 세계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의식, 사상 따위가 적혀져 있다. 마치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가 국제적 대세를 따르라고 가르치는 되돌아올 수 없는 일방통행 도로의 이정표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과연 세계화가 가장 최선이 되는 방법일까? ‘ 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그렇다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잠깐 19세기의 세계를 관찰해 보자. 19세기 유럽은 시민계급의 성장과 산업 혁명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경제력과 국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하여 더 큰 이익을 위해 아직 개발이 상대적으로 덜 된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들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이를 제국주의라고 현대의 역사가들은 지칭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제국주의라는 대세로 인한 피해국 중 하나였으며, 제국주의 시대가 끝난 이후 70년 만에 세계 13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 민족이 갖고 있었던 민족성 덕분에 가능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민족의 국민성 덕분에 이렇게 우리가 잘 살고 있다를 강조하고 싶은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제국주의 정복자들에게 착취당했던 것에 대한 보상을 많이 받은 편이었다. 반면 우리와 같은 처지였지만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나라들은 어떨까? 지금도 혼란 속에서 미래를 생각하기보단 당장 오늘 사는 것을 걱정하며 살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런 나라들은 대체적으로 유럽과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었던 아프리카 국가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모습이다.

 

국가 간의 상호 관계 개선을 외치고 있는 나라들의 대부분은 제국주의의 선도자였으며, 그들이 착취했던 나라들에게는 정식적인 사과와 보상을 해주기는커녕 다시 그들 위주의 국제적인 대세를 조성하고 있다. 물론 사회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과거보다는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경향성이 있기에 이전의 제국주의와 같은 비인간적인 풍조라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핵심은 그들이 잘못한 것을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원인제공의 주체가 되어 생겨난 비합리적인 것들을 민족국가 단위의 법제도는 국제적 감시 아래 효용성이 없다는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독일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유대인과 주변 유럽 국가들에게는 그들의 잘못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20세기 초기 세계 대전 이전에 존재했던 그들의 제국주의로 인한 피해자들, 이를테면 나미비아와 같은 국가들에게는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감히 세계화라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있을까? 지금의 행보로 봤을때는 아닌 것 같다.



; 이 소감문은  네이버 열린연단 <세계 시민으로 산다는 것: 이 지속적 자기박탈의 시대에>를 읽고 쓴 소감문입니다.